일기

2016년 5월 5일 날씨는 내내 맑다가 잠깐의 저녁 소나기

샬럿. 2016. 5. 5. 22:14


불을 다 꺼놓고 0시 너머에 혼자 영화를 보는 게 좋다. 영화의 공기가 더 잘 느껴진다. 특히 밤공기에 물기가 있는 여름 초입부터는. 오늘은 그렇게 새벽에 영화를 보다 정전이 됐다. "정전이야!"라고 누군가 한 번 소리친 듯이 들렸으므로 우리 집만이 정전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유일한 빛이었던 화면이 꺼지고 소리가 사라지고 방안은 완전히 까매졌다. 나는 한창 집중해 있던 장면이 끊긴 것에 대한 아쉬움과 두 주인공의 대화 속에서 내가 생각해낸 것을 몇 초간 곱씹은 후, 스르르 의자에서 일어나 손끝에 감각을 집중시켜 마지막에 핸드폰을 둔 위치를 더듬어 보았다. 첫 번째 위치는 땡. 두 번째 추측한 위치에서 물을 다 비운 유리컵을 두 손으로 매만지고 조금 더 왼쪽을 더듬어 핸드폰을 손에 잡았다. 핸드폰의 손전등 기능을 쓸 일이 생기다니 조금 설레기도 했다. 버튼에 손을 대니 환하게 불빛이 바닥과 벽면을 비췄다. 우선 방의 스위치를 눌러 보았다.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재차 정전이 맞음을 확인했다. 나는 그대로 거실로 나가 전원차단기 앞에 섰고, 전부 내렸다가 다시 올려보았다. 반응이 없었다. 이렇게 되면, 정전이 됐는지도 모르고 자고 있는, 밤 중에 꼭 몇 번이나 깨어나 화장실을 가는 아빠를 위해 손전등 하나 꺼내둘까 생각하고 나무 장식장 맨 아래 왼쪽에서 조금 오른쪽에 세워뒀던 그것으로 발걸음을 떼려는 차, "또르링" 하고 냉장고가, "탁" 하고 하얀 형광등이, 그 외 전자제품들이 부끄러운 듯 조용히 동시에 켜졌다. 정전의 끝. 굳이 손전등을 꺼내둘 필요가 없게 되자 나는 조금은 김이 빠진 것 같았다. 아주 잠깐 혼자만의 어린이 캠프, 이불 탐험 같은 게 시작되려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급작스럽게 끝나버리다니. 그래도, 화장실을 편안히 갈 수 있게 된 점은 좋았다. 황금연휴의 시작을 알리는 정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