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16년 3월 22일 날씨는 꽃이 만발하는 날을 미루는 중

샬럿. 2016. 3. 22. 22:50


와이파이를 끄고 유심칩을 빼면 휴대전화들은 하나의 화석이 된다. 메시지, 전화기록, 전화번호부, 마지막으로 쓰던 앱. 모든 게 타임캡슐처럼 멈춰 버린다. 당시의 휴대전화로는 여전히 '1'이 떠있는 대화창이나 금방 갱신된 프로필임을 알리는 노란색 바탕의 사람들. 지금은 이미 훌쩍 과거의 일이지만 거기서는 여전히 현재의 일이다. 그때 내가 하고 있었던 말, 새로운 상황이 생길 수 있었던 순간, 어떤 앱들을 썼던 이유. 현재에서 그것들을 구경하다 보면 잠수함을 타고 고요한 심해 속으로 내려가는 듯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나에게는 그런 화석이 2개 있었는데 며칠 전에 3개로 늘었다. 이제는 시조새 취급을 받는 갤럭시2를 떠나 영장류 직전 세대라 할 수 있는 아이폰 모델로 바꾼 것이다. 아무리 떨어뜨려도 튼튼한 데다가 분실 염려도 없어서(잃어버렸는데도 돌아왔다) 기존 폰도 좋긴 했지만 점점 시대의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버벅거리는 데다 호환성도 떨어져 몇 년만에 드디어, 드디어 바꿨다. 설명서를 읽어가며 기능 하나하나를 익혀 본 아이폰은 나의 선입견에 비해 더 직관적이고 사용하기가 편리했고 군더더기 앱이 없어서 깔끔했다. 요리로 치면 소금만으로 맛깔나게 간을 맞춘 산나물 같았다. 재빠른 일정 추가나 계산은 Siri로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고(타이머 맞추기 정말 편하다), 팟캐스트를 PC화면보다 더 깔끔하게 볼 수 있게 됐다. 특히 놀랐던 부분은 아이튠즈인데, 아이튠즈 계정을 연동하니 자동으로 구매한 음악 목록이 짠하고 뜨면서 굳이 PC에서 폰으로 파일을 옮기지 않고도 끊김 없이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쓰니 아이폰 예찬론으로 가는 것 같은데 아닌 게 아니라 Evernote처럼 안드로이드에서 썼던 앱까지도 아이폰에서가 더 사용하기가 편해서, 내 마음은 순식간에 안드로이드의 잔디밭에서 이탈했다. 음, 아직은 완전히 익숙지 않아서 전화 받으려다 통화 종료를 눌러 버리기는 하지만, 차차 활용법을 더 익혀가면 애정이 깊어질 것 같은 예감이다.


근데 설명서를 보면 국가에 따라서는 Siri의 성별도 선택할 수가 있다던데 한국은 아닌가 보다!!